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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복 있으세요
설교본문 민 6:22-26  설교자 김준수 목사 
설교일 2012-12-16  조회수 2405
제목 복 있으세요
본문 민 6:22-26
장소 밝은세상교회
시기 2012. 12. 16
 
 
구약성경의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쪽 쿰란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1947년 베두윈 소년에 의해 사본이 처음 발견된 이후,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사본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사본들을 쿰란문서들이라고 부릅니다. 발견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주전 250년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쿰란 사본보다 무려 400년 앞서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정열을 불사른 한 학자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어낸 값진 수확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바르 일란 대학교의 고고학자인 가브리엘 바르카이(Gabriel Barkay) 교수입니다. 바르카니 교수는 고대 예루살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기 위해 힌놈의 아들 골짜기 서쪽 언덕인 케텝 힌놈(Ketef Hinnom)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1975년부터 1996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케텝 힌놈 일대를 뒤지다가 솔로몬 성전 시대의 가족무덤들을 발굴했습니다. 이 귀족 무덤에서 1천 개가 넘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발견된 유물들 가운데 진기한 유물 두 점이 있었습니다. 두 개의 유물은 담배 대롱처럼 둥글게 말려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얇은 은으로 된 두루마리였습니다. 은편자는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검게 부식되어 있었고 잘못 다루다간 산산조각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다뤄져야 했습니다. 바르카이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담배 대롱 같은 유물을 펼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은편자 안에는 매우 가늘고 정교한 펜으로 쓴 히브리어 글씨들이 있었습니다. 그 글씨들은 오늘 날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한 은편자에는 신명기 7장 9절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 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 푸시되”(신명기 7:9)
 
또 다른 은편자에는 제사장 축복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제사장 축복문은 민수기 6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는 분들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입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목사님들이 축도를 하면서 이따금 이 말씀으로 축도하기 때문에 낯 익은 말씀입니다. 저도 가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축도문과 함께 이 제사장 축도문으로 축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함께 큰 목소리로 선포해봅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수기 6:24-26)
 
제사장의 축복문은 옛날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많이 애독하는 성경말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도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가족들의 식사 자리에서 이 말씀으로 자녀들을 축복하며, 회당에서도 이 말씀을 읊조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곤 합니다. 2700년 전 예루살렘에 살았던 여호와 신앙인들이 읽었던 동일한 말씀을 우리들이 읽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만이 소망이고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애독했습니다. 현대인들도 하나님만이 소망이고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열심히 애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시대를 막론하고 읽히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롭고 신비하며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을 일으키는 힘이 있기에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나 이렇게 읽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때 행복합니까? 제 경우에는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사위와, 그리고 사랑하는 손자 율과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식사찬양과 기도를 드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율을 보며 “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자.”라고 말하면 귀여운두 살배기 율은 다른 동작을 멈추고 얼른 두 손을 모읍니다. 할머니나 엄마가 다른 일을 하느라 서성이면 이 귀여운 녀석은 어서 빨리 의자에 앉으라고 졸라댑니다. 모든 식구들이 의자에 앉고 나서야 비로소 손자 녀석은 이제 됐다는 듯 좋아하며 찬양을 부를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제게 보냅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예쁘고 작은 두 손을 모읍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손을 모으고 율의 눈과 마주치며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늘 찬양합니다.”
 
찬양이 끝나고 나는 “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율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눈을 꽉 감습니다. 이 모습은 내가 죽어서도 무덤 속에 가지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내가 행복한 것은 외손자 율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 자체도 자체려니와,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들을 향해 변함없는 보호의 눈길을 보내주신다고 하는 어떤 든든한 마음이 너무나 확고히 제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이 풍파 많고 험한 세상에 누가 나를 보호해주시고 축복해주는가? 누가 내 평생에 내게 힘을 주시고 위로자가 되시는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내 인생의 든든한 백입니다. 여러분, 돈도 믿을만한 백이 못됩니다. 부귀도 믿을만한 백이 못됩니다. 사람도 믿을만한 백이 못됩니다. 아무리 좋은 대통령을 뽑아도 믿을 만한 백이 못됩니다. 이런 것들은 변하고 변덕스럽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변덕스럽지도 않고 그리고 영원하십니다. 그 분은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가정과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복을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우주적인 현상입니다. 거룩한 작은 성소인 가정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하나님을 신앙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소망하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복을 주신다는 믿음과 기대가 제사장 축복문에 담겨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이 말씀으로 축도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공적 예배의 끝 순서부분에서 목사는 축도를 합니다. 이 축도는 그 형식이나 내용이 신약성경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토대가 되는 성경구절이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개신교회의 목회자들이 하는 축도문의 신학적 배경은 구약의 제사장 축도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이 개신교 예배에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복문을 사도적 축도문으로 공식적 제도로 도입한 것을 보면, 이 축도문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지금도 독일교회에서는 구약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 축도문을 공예배의 축도문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이런 말씀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민수기 6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세 개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들을 외어 여러분 자신과 가족들과 교회의 지체들에게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민수기의 제사장 축도문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가지고 이 짧은 축도문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축도문은 축복의 내용이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축복인 24절은 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예바레크카 예호와 웨이쉬메레카”(*r,m]v]yIw_ hw:hy_ *k]r,b;y_) 두 번째 절은 다섯 단어, 마지막 절은 일곱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축복이 점층적으로 강화되고 고조되어 마지막 단계인 평강, 즉 샬롬의 복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각 절의 축복의 내용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의 문장은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실 것이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복을 주시고, 얼굴을 비추시고, 얼굴을 드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뒤따라 나오는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을 주시고’는 그러한 하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축복문의 세 번째 특징은 축복의 내용을 이끄는 동사들의 주어가 여호와란 점입니다. 이것은 복을 주시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비록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도를 하고 있지만, 복의 근본적 출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을 통로로 복의 근원이신 당신의 권위에 기초해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축복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죠. 자, 이러한 특징들을 염두에 두고 이 제사장 축도 내용을 살펴봅시다. 먼저 첫 번째 축도인 24절을 읽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이 축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신변과 안전을 보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복을 얻고 안전과 풍요를 누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실패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어둠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자살하거나 아니면 뜻밖에 남의 손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야만 우리는 영육간에 강건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 속에서 축복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습니다. 옆분들에게 손을 내밀어 축복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코헨이란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제사장을 뜻하는 '코헨'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옛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두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할 때 양손의 손 모양이 히브리어 글자인 ‘쉰’(שׂ')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쉰 שׂ'은 전능자 하나님을 뜻하는 '샤다이'의 첫 글자입니다. 코헨 교수는 신학생들에게 양손으로 쉰 모양을 해보라고 하며, 그 모양을 하는 학생은 목사가 될 소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답니다. 여러분도 한번 흉내내보시렵니까? 제사장의 손 모양을 하면서 한번 옆엤 분에게 24절의 말씀으로 축복해보십시오. “여호와는 당신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을 지키시키를 원하십니다.” 아멘!
 
두 번째 축도는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빛’이라는 은유로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실 때에 이스라엘은 빛에서 얻어지는 결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은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은혜는 보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무효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단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들의 반응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격이 나쁘고, 습관이 잘못되고, 때론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모습을 보시고 있는 그대로 심판하신다면 우리들 중에 살아남을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이 말씀으로 손을 내밀어 옆에 있는 지체를 축복해보십시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당신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세 번째 축도는 26절에 나와 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에 대한 큰 관심의 표명이고 적극적인 행동의 표현입니다. 얼굴빛을 비추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수동적 차원이라면,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더 크고 더 깊고 더 넓은 사랑과 용서로 우리는 인생의 최상의 복인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평화, 즉 샬롬의 평강이 우리 삶에 찾아오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의 안전,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평강의 복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영육간에 더욱 강건하고 온전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손을 내밀어 옆에 계시는 분을 축복해보십시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당신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인생의 모든 복과 모든 안전과 보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선언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 머리에다 손을 얹고 축복을 선언하십시오.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시고 나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내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여러분의 배우자에게도 선언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선언하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동역하는 지체들을 향해 이 축복의 메시지를 선언하십시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
 
사랑하는 밝은세상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나시어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사도 바울도 편지를 끝낼 때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며 축복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강이 최상의 축복입니다. 평강이 깨지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됩니다.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평안 위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평강이 없다면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줄 수도,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참 평안이요 참 행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평안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평안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이 그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할렐루야! 주님 안에서 평강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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